“사탕수수밭 살인 주범 임시 인도”…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 송환
– 박왕열, 사탕수수밭 살인 주범 25일 국내 송환
– 인천공항 도착 뒤 침묵, 마약 공범 수사 확대
– 범정부 협의로 임시 인도, 추가 조사 본격화
[트러스트=전우민 기자] 정부가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수감 중에도 국내에 대규모 마약을 유통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48)을 25일 임시 인도 방식으로 국내 송환했다.

박왕열은 이날 민항기를 타고 새벽 필리핀 클라크필드를 출발해 오전 6시 34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여객기에는 다른 승객들도 함께 탑승했고, 호송관 2명은 박왕열의 양옆에 앉아 수갑을 채운 채 이동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남색 야구 모자와 회색 카디건 차림이었고, 마스크 없이 덥수룩한 수염을 드러낸 채 소매를 걷어 올려 팔 문신도 노출됐다. 수십 명의 호송 경찰 인력에 둘러싸여 입국장을 빠져나간 그는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 피해자나 유족에게 할 말 없냐” “필리핀 교도소에서 호화 생활을 했느냐” “국내로 송환된 심경이 어떤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박왕열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한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고, 다시 흘끗 쳐다본 뒤 “너는 남자도 아녀”라고 말한 장면도 포착됐다. 기자가 “남자도 아니라고요?”라고 되묻자 그는 “응”이라고 짧게 답했다. 박왕열은 공항 도착 뒤 약 3분 만에 호송차에 올라 인천공항을 떠났다.
이번 송환의 배경에는 필리핀 현지 강력범죄와 국내 마약 유통 혐의가 함께 얽혀 있다.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됐고, 2022년 필리핀 대법원에서 징역 60년형을 확정받아 복역해 왔다. 복역 중에도 텔레그램 등을 이용해 국내에 필로폰 등 마약류를 대규모로 유통한 것으로 알려졌고, 필리핀 교도소에서 호화 생활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두 차례 탈옥 시도 전력도 드러났다.
국내 수사는 마약 유통망과 공범, 범죄수익 추적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박왕열 사건을 집중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왕열은 필리핀에서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로 활동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판매책과 밀수책, 운반책 등을 모집해 마약류를 국내로 밀반입하고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 국내 판매책과 밀수책, 운반책 등 다수의 공범이 함께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을 위해 경찰은 경기북부경찰청을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하고 전담 인력도 별도로 꾸렸다. 경기북부경찰청 마약범죄수사관 12명,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관 2명, 서울경찰청 가상자산 분석팀 6명 등 모두 20명이 투입됐다. 경찰은 박왕열이 취득한 범죄수익을 추적해 환수할 예정이며, 신상정보공개위원회를 열어 공개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항 도착 직후 수사 방향도 공개됐다. 유승렬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연 브리핑에서 “여러 수사를 통해 다수의 공범을 확인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압수한 휴대전화 등 증거물을 분석하고 공범 조사를 벌여 관련 마약조직의 실체를 규명한 뒤 신속히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혔고, 송치 이후에도 여죄를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송환 작업은 외교와 수사, 교정 당국이 함께 움직인 범정부 대응으로 진행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박왕열에 대한 범죄자 임시 인도를 요청했다. 임시 인도는 범죄인 인도 청구국의 형사 절차 진행을 위해 피청구국이 자국 내 재판 또는 형 집행 절차를 중단하고 신병을 일시적으로 넘기는 제도다. 대통령 요청 이후 법무부와 외교부, 국가정보원, 검찰청, 경찰청은 필리핀 당국과 긴밀한 협의를 이어갔고, 송환 요청 약 한 달 만에 박왕열의 신병을 넘겨받았다.
이와 별도로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주무 기관으로서 앞서 2월 필리핀 당국에 임시 인도 청구를 진행했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직접 필리핀을 방문해 현지 법무부 장관과 면담하고 한국 법무부 장관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이후 수차례 실무 협의를 거쳐 송환 승인을 받아냈다. 이지연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은 법무부가 2017년 살인 혐의를 두고 인도를 청구했지만 필리핀이 피의자의 현지 재판과 형 집행을 이유로 사실상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감 중에도 국내에 마약을 유통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범정부 판단 아래 마약 범죄에 한해 임시 인도를 다시 청구했고, 공항 여건과 현지 지리적 특성, 박왕열의 탈옥 전력까지 반영해 호송 경로와 방식을 조율했다고 밝혔다.

실제 송환에는 검찰과 경찰, 교정본부가 함께 참여한 합동 호송팀이 투입됐다. 항공기 안에서의 기내 난동이나 탈출 시도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해 교정본부 기동순찰팀까지 배치됐고, 박왕열은 이 같은 경계 속에 국내로 들어왔다. 법무부는 박왕열이 임시 인도 청구에 따라 송환된 만큼 청구서에 적시된 범죄 사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끝나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송환 사실을 공개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정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3월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직접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이후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TF가 1달여간 필리핀 당국과 협의한 끝에 범죄인을 인도받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박왕열의 국내 마약 밀수와 유통, 판매 혐의를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를 처벌하고 범죄수익도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자는 국경을 불문하고 끝까지 추적해 사법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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