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벗다”… 애나 윈터, 37년 만에 美 보그 편집장직 사퇴
– 애나 윈터, 1988년 취임 후 37년… “새 세대 편집자 지원에 집중”
– 글로벌 CCO·보그 글로벌 디렉터 직함은 유지, 후임 찾기 착수
– “사무실도, 애장 도자기도 그대로”… 콘데 나스트에 남아 리더십 강화
[트러스트=박민철 기자] 애나 윈터(75)가 미국판 보그(Vogue)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열린 직원회의에서 그는 “오랫동안 고민해 온 결정을 공유한다”며 37년간 지켜 온 보그 수장직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윈터는 1988년 취임 이후 패션·문화 지형을 바꾼 ‘전설적인 편집장’으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냉철한 편집장 캐릭터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윈터는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콘데 나스트 글로벌 최고콘텐츠책임자(CCO)와 보그 글로벌 에디토리얼 디렉터로서의 역할은 그대로 유지한다.
그는 “내 사무실도, 애장하는 클라리스 클리프 도자기도 옮기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몇 년간 전 세계 뛰어난 편집자들과 협력해 그들이 각자의 비전을 펼치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판 보그는 ‘헤드 오브 에디토리얼 콘텐츠(Head of Editorial Content)’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업계는 윈터가 여전히 GQ, 배니티페어 등 다수 매체의 유럽판을 감독하는 만큼, 후임 편집장이 실질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업계에선 윈터의 ‘퇴진 아닌 승진’으로 해석한다. 글로벌 콘텐츠 전략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윈터가 보그 단일 지면을 넘어 콘데 나스트 전체 브랜드를 조율하는 ‘왕중왕’ 역할을 강화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부 내부 직원들은 “융합 편집 체제 도입으로 각 매체의 색이 희석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콘데 나스트는 빠른 시일 내 후임자를 찾겠다고 밝혔다. 40년에 육박하는 윈터의 재임 동안 보그는 패션 잡지를 넘어 문화·사회 이슈를 아우르는 미디어로 성장했다. ‘핵윈터(Nuclear Wintour)’로 불릴 만큼 강압적 리더십 논란도 있었지만,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확장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윈터는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목소리가 필요하다”며 “젊은 에디터들이 자유롭게 실험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 런던 출신인 윈터는 1983년 콘데 나스트에 합류, 5년 만에 미국판 보그를 이끌며 슈퍼모델 대신 유명 인사를 표지에 세우는 파격 전략으로 잡지의 대중성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메트 갈라(Met Gala)를 세계적 패션 이벤트로 키우고,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렉산더 맥퀸·존 갈리아노 등을 발굴해 패션계 트렌드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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