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헤비메탈의 심장을 울린 드러머… 백두산 원년 멤버 한춘근 별세
– 헤비메탈 전성기를 이끈 백두산의 원년 드러머 한춘근 별세
– 미8군 무대와 여러 밴드 활동을 거쳐 백두산 창단 멤버로 활약해
– 백두산 재결합과 솔로 음반 발표까지 이어진 그의 음악 인생
[트러스트=박민철 기자] 1980년대 한국 록 음악의 뜨거운 시절을 함께했던 드러머 한춘근이 세상을 떠났다. 백두산의 원년 멤버로 이름을 알린 그는 강렬한 비트와 묵직한 에너지로 한국 헤비메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3일 가요계에 따르면 한춘근은 지난 1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다. 한 시대를 울리던 드럼 사운드가 멈췄다는 소식에 음악계 안팎에서는 안타까움이 이어지고 있다.

1955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한춘근은 젊은 시절부터 음악의 현장에서 실력을 쌓아 올렸다. 그의 출발점은 1970년대 초반 미8군 무대였다. 당시 미8군 무대는 한국 대중음악인들에게 가장 치열하면서도 수준 높은 실전 무대로 꼽혔다. 다양한 장르와 빠른 템포, 높은 연주 완성도가 요구되던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곧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뜻이었다. 한춘근 역시 그룹 영에이스의 드러머로 활동하며 이 무대를 누볐고, 이후 7인조 그룹 라스트 찬스에서도 연주를 이어갔다. 단순히 밴드의 리듬을 맞추는 연주자가 아니라, 현장 경험을 통해 음악적 체력과 감각을 단단히 다진 연주자였던 셈이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점은 1986년이다. 한춘근은 유현상, 김도균, 김창식과 함께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을 결성했다. 당시 백두산은 국내 록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강렬한 사운드와 폭발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보컬 유현상의 힘 있는 음색, 김도균의 공격적인 기타 연주, 김창식의 베이스 라인 위에 한춘근의 드럼은 밴드의 중심을 단단하게 받쳤다. 록밴드에서 드럼은 단순한 반주 악기가 아니다. 곡 전체의 긴장감과 속도, 무게를 조절하는 핵심 축이다. 백두산의 음악이 더 거칠고 더 뜨겁게 살아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춘근의 존재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백두산은 1980년대 한국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2집 킹 오브 록큰롤과 수록곡 업 인 더 스카이는 지금도 백두산을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강력한 기타 리프와 시원하게 뻗는 보컬, 그리고 이를 단단히 붙잡는 드럼의 조화는 당시 한국 록 팬들에게 큰 충격과 전율을 안겼다. 대중음악 시장에서 록과 헤비메탈이 지금보다 더 좁은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백두산은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분명한 존재감을 남겼다. 한춘근의 드럼은 그 중심에서 곡의 무게를 지탱하며, 백두산 특유의 에너지와 속도감을 살아 있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다.
백두산은 1987년 2집 활동을 끝으로 해체했다.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남긴 흔적은 결코 짧지 않았다. 이후 1992년에는 유현상이 빠진 상태에서 김도균을 중심으로 3집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다시 긴 공백기를 맞게 됐다. 밴드의 이름은 한동안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렀지만, 팬들에게 백두산은 여전히 한국 록의 뜨거운 상징이었다. 그리고 한춘근 역시 उस 시대를 함께 만든 원년 멤버로 꾸준히 기억됐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다시 무대와 음반으로 돌아왔다. 2009년 한춘근은 원년 멤버들과 함께 재결합해 백두산 4집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재회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한국 록 음악의 한 시대를 함께 열었던 멤버들이 다시 뭉쳐 자신들의 이름으로 새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도 특별한 순간으로 받아들여졌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의 음악 인생은 밴드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1년에는 드럼 솔로 음반 백두대간을 발표하며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드러냈다. 드러머가 솔로 음반을 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드문 일이다. 그만큼 자신의 연주 세계와 음악적 색깔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선택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그의 음악에는 한국적인 정서와 록의 강렬한 에너지를 동시에 담아내려는 의지가 읽힌다. 이는 그가 단지 한 시절의 밴드 멤버로 머무르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악기와 음악을 붙들고 살아온 연주자였음을 보여준다.
한춘근의 별세는 단순히 한 명의 뮤지션을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록과 헤비메탈의 한 페이지가 또 한 장 넘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1970년대 미8군 무대에서 시작해 1980년대 백두산으로 정점을 찍고, 2000년대 재결합과 솔로 작업까지 이어진 그의 여정은 곧 한국 록 음악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보컬이나 기타리스트에 비해 드러머는 때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기도 한다. 그러나 밴드의 심장은 리듬이고, 리듬의 중심에는 드럼이 있다. 한춘근은 바로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한국 록의 박동을 만들어온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백두산의 노래를 다시 틀면, 곡을 밀어붙이는 힘과 긴장감 속에서 그의 드럼은 지금도 또렷하게 들린다. 음악 팬들에게 그는 단지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한국 헤비메탈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 같은 존재다. 특히 록 음악이 지금보다 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개성과 열정으로 버텨야 했던 시절, 한춘근 같은 연주자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한국 록의 뿌리도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유가족으로는 딸이 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장례식장 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후 2시 엄수된다.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강렬한 박자로 시대를 두드렸던 연주자. 한춘근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리듬과 울림은 오래도록 한국 록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백두산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때마다, 팬들은 그 중심에서 묵직하게 박동하던 한 드러머의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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